2026년 7월 19일 일요일

낯선 땅의 이웃을 위한 기도

한 젊은 이주노동자의 비극적인 죽음은 그리스도께서 낯선 이 안에 현존하시며 모든 사람 안에서 그분의 얼굴을 보도록 우리를 부르심을 일깨워줍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여기 있는 내 형제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

마태오 복음 25:40

주님께서는 나그네들을 보호하시고 고아와 과부를 돌보시지만, 악인들의 길은 멸망에 이르게 하신다.

시편 146:9 (70인역 145:9)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저녁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소식이 있습니다. 먼 우즈베키스탄 땅에서 희망을 찾아 이곳에 온 한 젊은이가, 거대한 배를 만드는 현장에서 일하다가 차가운 구조물 사이에서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입니다. 스무 해 남짓한 그의 짧은 생이 낯선 땅에서 그토록 갑작스럽게 멈추었다는 사실에 깊은 슬픔을 느낍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나그네'를 기억하라고 끊임없이 말씀하십니다. 우리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나그네였고, 이스라엘 백성도 이집트 땅에서 나그네살이를 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친히 말씀하십니다. "너희와 함께 사는 외국인을 너희 나라 사람처럼 여기고, 네 몸처럼 사랑하여라." (레위기 19:34)

오늘 복음 말씀은 더욱더 우리의 마음을 찌릅니다. "너희가 여기 있는 내 형제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 그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세상의 눈으로는 그저 이름 없는 이주노동자였을지 모를 그 젊은이 안에 바로 그리스도께서 계셨습니다. 우리는 그를 보았습니까? 그의 얼굴에서, 그의 고된 노동과 땀방울 속에서 우리를 찾아오신 주님을 알아보았습니까? 아니면 그저 거대한 산업의 보이지 않는 부품으로만 여겼습니까?

정교회는 모든 인간이 살아있는 하느님의 모상, 즉 '이콘'이라고 가르칩니다. 한 사람의 생명은 온 우주보다 귀하며, 그 가치는 결코 생산성이나 효율성으로 측정될 수 없습니다. 한 젊은이의 죽음은 단순한 산업재해 통계가 아니라, 하느님의 거룩한 모상이 훼손된 비극적인 사건입니다. 그의 꿈과 희망, 그의 가족들의 사랑이 함께 부서져 내린 것입니다.

우리는 뉴스 기사에서 그의 이름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의 이름을 아십니다. 하느님께서는 그의 마음속 깊은 곳의 모든 생각과 바람을 아십니다. 우리는 이제 그를 '인류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에 맡겨드립니다. 동방교회는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해 기도하며 “영원한 기억(Вечная память)”을 노래합니다. 이는 인간의 기억에서 잊힐지라도, 하느님의 영원한 기억 안에 머무는 것이야말로 참된 생명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 비극 앞에서 우리 자신을 돌아봅시다. 이 사건은 우리 모두에게 회개(메타노이아), 곧 마음의 방향을 바꾸라는 절박한 부르심입니다. 우리의 편리함과 풍요로움을 위해 누군가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희생되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의 무관심이 이웃의 고통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지 성찰합시다. 이 젊은이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 주변의 가장 작은 이들, 낯선 이웃들 안에서 그리스도의 얼굴을 발견하려는 노력을 결코 멈추지 맙시다. 그가 이제 모든 질병과 슬픔과 탄식이 없는 빛의 장소에서 안식하기를 기도합니다.

기도

자비로우신 주님, 낯선 땅에서 고된 삶을 살다 주님 품으로 돌아간 당신의 종을 기억하소서. 그의 영혼에 영원한 안식을 주시고, 슬픔에 잠긴 유가족들을 위로하여 주소서. 저희의 무뎌진 마음을 열어주시어, 모든 이웃 안에서 당신의 얼굴을 뵙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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