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20일 월요일

가장 작은 이들의 보금자리

경제적 어려움으로 가족을 꾸릴 희망을 잃어가는 젊은이들에게, 서로의 짐을 져 주시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하느님의 돌보심에 대한 믿음을 상기시킵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입을까?’ 하며 걱정하지 마라. 이런 것들은 모두 다른 민족들이 애써 찾는 것이다. 너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아신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마태오 6:31-33

서로 남의 짐을 져 주십시오. 그러면 그리스도의 율법을 완성하게 될 것입니다.

갈라티아 6:2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아침, 우리나라의 출산율이 조금 올랐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언뜻 보기에는 반가운 소식일 수 있지만, 그 기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 마음을 무겁게 하는 그늘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반등은 주로 경제적으로 안정된 일부 계층에 한정된 것이며, 수많은 젊은이들은 여전히 집 한 칸 마련하기 어려워 결혼과 출산을 꿈조차 꾸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부모가 될 기회’마저 불평등한 현실 앞에서 많은 청년이 느끼는 막막함과 불안이 제 마음에도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아마 많은 젊은 부부와 예비부부들이 밤에 잠 못 이루며 이런 걱정을 할 것입니다. ‘우리가 과연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이 치솟는 집값 속에서 우리 가족이 머물 곳은 어디일까?’ 이러한 걱정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는 원초적인 질문과 맞닿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걱정에 짓눌린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늘의 새를 보아라. … 너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아신다.”

이 말씀은 우리의 현실적인 고통을 외면하라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의 가장 깊은 필요와 간절한 바람을 하느님 아버지께서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신다는 위로의 말씀입니다. 우리의 불안과 걱정의 무게를 그분 앞에 그대로 내려놓으라는 초대입니다. 우리의 참된 안정과 희망이 부동산 시세나 은행 잔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당신의 눈동자처럼 아끼시는 하느님의 사랑 안에 있음을 기억하라는 부르심입니다. 먼저 그분의 나라와 의로움을 찾을 때, 우리의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 주시리라는 약속을 믿으라는 격려입니다.

그렇다면 하느님께서는 어떻게 우리의 필요를 채워 주실까요? 바로 ‘우리 서로’를 통해서입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이렇게 권고합니다. “서로 남의 짐을 져 주십시오. 그러면 그리스도의 율법을 완성하게 될 것입니다.” 젊은이들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어가는 이 사회적 문제는 더 이상 그들만의 짐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 공동체 모두가 함께 져야 할 ‘서로의 짐’입니다. 우리 신앙 공동체는 세상의 논리를 넘어, 서로의 아픔에 귀 기울이고, 가진 것을 나누며, 함께 울고 함께 웃는 ‘사랑의 보금자리’가 되어야 합니다. 나보다 어려운 이웃의 고통을 나의 아픔으로 여기며 기도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도움의 손길을 내밀 때, 우리는 하느님 돌보심의 도구가 됩니다.

성가정 또한 안정된 집 없이 여관방을 찾고, 헤로데의 칼을 피해 이집트로 피난을 떠나야 하는 불안한 여정을 겪으셨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순간에 하느님의 손길이 함께하셨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특히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는 젊은이 여러분, 여러분은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좋으신 하느님 아버지께서 여러분의 길에 함께하시며, 우리 교회가 여러분의 짐을 함께 지는 따뜻한 동반자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우리 모두 하느님의 돌보심에 온전히 의탁하며, 서로에게 희망의 빛이 되어 줍시다.

기도

사랑의 하느님,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지친 젊은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소서. 저희가 서로의 짐을 함께 지는 법을 배우고, 당신의 돌보심 안에서 참된 평화와 희망을 찾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오늘의 말씀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