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19일 일요일

가장 작은 이의 안식처

울산 조선소에서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이주노동자의 비극을 통해,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이들을 특별히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위로와 이방인을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성경의 가르침을 되새깁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마태오 복음 11:28

“너희와 함께 사는 이방인을 너희 본토인 가운데 한 사람처럼 여겨야 한다. 또한 그를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너희도 이집트 땅에서 이방인이었기 때문이다.”

레위기 19:34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울산의 한 조선소에서 들려온 비극적인 소식에 마음이 무겁습니다. 스무 살 남짓한 우즈베키스탄 청년이 고된 노동 현장에서 사고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가족과 고향을 떠나 낯선 땅에서 꿈을 키우려던 한 젊은이의 삶이 너무나 갑작스럽게 멈춰 섰습니다. 이 소식을 접한 그의 머나먼 고향의 가족들은 지금 어떤 심정일지, 그 슬픔의 깊이를 감히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비극 앞에서 우리는 침묵 속에 주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세상의 소음과 분주함 속에서 잊히기 쉬운 한 생명의 가치를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몸소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노동의 고단함과 삶의 무게를 누구보다 잘 아셨습니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마태 11,28) 이 말씀은 고된 노동의 현장에서 스러져간 젊은 영혼을 향한 주님의 첫 번째 위로일 것입니다. 그는 단지 이름 없는 이방인 노동자가 아니라, 주님께서 친히 안식을 주시겠다 약속하신, 사랑받는 아들이었습니다.

더 나아가, 교회는 우리 가운데 있는 이방인, 곧 나그네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분명히 가르칩니다. 구약성경은 우리에게 단호하게 명령합니다. “너희와 함께 사는 이방인을 너희 본토인 가운데 한 사람처럼 여겨야 한다. 또한 그를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너희도 이집트 땅에서 이방인이었기 때문이다.” (레위 19,34) 이 말씀은 단순히 관용을 베풀라는 권고가 아닙니다. 그를 ‘우리 중 한 사람’으로, ‘나 자신처럼’ 여기라는 사랑의 계명입니다. 우리 신앙의 선조들이 겪었던 나그네의 설움을 기억하며, 오늘 우리 곁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주민들을 형제적 연대감으로 끌어안으라는 요청입니다. 이번 사고는 우리 사회가 이 부르심에 얼마나 충실했는지 돌아보게 하는 아픈 성찰의 계기가 됩니다.

물론, 이 슬픔 앞에서 섣부른 위로나 해답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희망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우리의 희망은 이 세상의 성공이나 안전에만 있지 않고,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가장 보잘것없는 이들 안에서 당신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비록 세상의 눈에는 머나먼 타국에서 온 이름 없는 노동자로 보였을지라도, 하느님의 눈에는 그 누구보다 소중한 자녀였습니다. 우리는 그 젊은 영혼이 이제 세상의 모든 수고와 짐을 내려놓고, 하느님 아버지의 품 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되었음을 굳게 믿습니다.

이제 우리는 기도 안에서 그와 하나가 됩시다. 그의 영혼을 위해, 그리고 비통에 잠겨 있을 그의 가족들을 위해 마음을 모읍시다. 또한 이 땅의 모든 노동자, 특별히 위험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이 존중받고 보호받는 사회가 되도록 우리의 마음과 노력을 모아야 하겠습니다. 주님의 자비가 고인의 영혼 위에, 그리고 슬퍼하는 모든 이들 위에 풍성히 내리기를 기원합니다.

기도

자비로우신 주님, 머나먼 타국에서 고된 노동 끝에 주님 품으로 돌아간 젊은 영혼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슬픔에 잠긴 그의 가족들을 위로해 주시고, 저희가 모든 생명을 소중히 여기며 서로를 보살피는 공동체를 이루어 가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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