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17일 금요일
당신이 살린 소녀가 묻고 싶어 합니다
베트남 전쟁 민간인 학살 생존자들이 가해자였던 한국 군인과의 만남을 통해 진실과 화해를 갈망하는 모습을 보며, 외면할 수 없는 역사의 진실과 용서, 그리고 평화를 이루는 이들의 소명을 성찰합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무슨 짓을 저질렀느냐? 들어 보아라. 네 아우의 피가 땅에서 나에게 울부짖고 있다.”
창세기 4:10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마태오 복음 5:9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는 한 신문 기사를 통해 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묻혀 있던 고통의 목소리를 듣게 됩니다. 베트남 전쟁 당시 우리 군인들에 의해 벌어진 민간인 학살의 생존자들이 이제 백발의 노인이 되어 우리에게 말을 건네고 있습니다. 한 분은 자신을 살려주었을지도 모르는 한국 군인을 찾고 싶다고 말합니다. 다섯 살 소녀였던 자신의 머리채를 잡았던 군인의 손아귀가 어째서 느슨해졌는지, 그가 양심의 가책으로 자신을 놓아준 것은 아닌지, 살아 있다면 꼭 만나 묻고 싶다고 합니다. 또 다른 분은 위험을 알려주어 오빠의 목숨을 구한 군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고 합니다.
이들의 요청 앞에서 우리는 깊은 침묵과 성찰의 시간을 갖게 됩니다. 이 이야기는 단순히 원망과 분노의 기록이 아닙니다. 그 안에는 용서에 대한 희미한 기대와 인간적인 만남에 대한 깊은 갈망이 담겨 있습니다. 참혹한 비극 속에서도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그 이유를 찾으려는 한 인간의 존엄한 질문이 담겨 있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우리는 인류 첫 번째 살인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주님께서 카인에게 “네 아우 아벨은 어디 있느냐?” 하고 물으셨을 때, 그는 “모릅니다.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 하고 외면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네가 무슨 짓을 저질렀느냐? 들어 보아라. 네 아우의 피가 땅에서 나에게 울부짖고 있다.” 지난 수십 년간, 우리 사회는 어쩌면 베트남에서 울려 퍼지는 이 피의 울부짖음에 대해 카인처럼 “모른다”고, “나와 상관없다”고 답해왔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느님 앞에서는 어떤 진실도 영원히 묻힐 수 없습니다. 땅에 스민 피는 소리 없는 아우성이 되어 하느님께 울부짖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기사는 그 울부짖음 너머의 놀라운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바로 화해의 씨앗입니다. 머리채를 잡았던 손이 느슨해졌던 그 순간, 우리는 한 군인의 마음속에서 일어났을지도 모르는 내적 갈등을 상상해 봅니다. 상관의 명령과 인간의 양심 사이에서, 증오의 광기와 한 아이의 생명에 대한 연민 사이에서 벌어졌을 그 짧은 순간의 투쟁 말입니다. 만약 그가 의도적으로 소녀를 살려주었다면, 그것은 전쟁이라는 거대한 죄악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하느님의 모상, 그 선함의 불꽃이 한순간 빛을 발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것은 어둠 속에서 피어난 작은 은총의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 설교에서 말씀하셨습니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평화를 이루는 일은 단순히 갈등을 피하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오늘 기사의 변호사들처럼 잊힌 상처를 들추어내고, 고통스러운 진실을 마주하며, 정의를 통해 참된 화해의 다리를 놓는 고된 여정입니다. 베트남의 생존자들은 복수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이해를, 그리고 인간적인 만남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용기 있는 요청은 우리 모두를 평화를 이루는 사람이 되라는 주님의 거룩한 부르심으로 초대하고 있습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사는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우리의 책임입니다. 그 군인을 우리가 찾아줄 수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당신이 살린 그 소녀가, 이제 할머니가 되어 당신을 만나고 싶어 한다’는 그 애틋한 소망에 응답하는 공동체가 될 수는 있습니다. 진실을 마주할 용기를 내고, 아픔을 위로하며, 치유를 위해 함께 기도하는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비로소 카인의 후예가 아니라, 평화를 이루는 하느님의 자녀로 거듭날 것입니다.
기도
자비의 주님, 수십 년간 고통 속에서 신음해 온 이들의 목소리를 저희가 외면하지 않게 하소서. 저희에게 진실을 마주할 용기와 상처 입은 이들을 위로할 사랑을 주시고, 이 땅에 참된 정의와 화해를 이루는 평화의 일꾼이 되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